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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이혼 [조희연의 시대사색]‘이중 로컬 정체성’ 가진 생태시민 키우는 농촌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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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중 작성일25-10-11 23:51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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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이혼 기후위기 시대,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우리는 산업문명이 만들어낸 풍요 속에서 자연을 오랫동안 ‘배경’으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 자연은 인간의 무대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생명의 이웃으로 다가오고 있다. 교육이 이 변화를 외면한다면 다음 세대는 방향을 잃게 될 것이다. 그 새로운 배움의 길목에 ‘농촌유학’이 있다.
농촌유학은 도시 아이들이 한 학기 이상 농촌의 작은 학교에 머물며 배우고 생활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 혼자만 가서 생활하는 ‘홈스테이형’, 지역센터에서 다른 학생과 공동생활하는 ‘유학센터형’, 나아가 ‘가족체류형’이 있다. 아무래도 초등학생이 대다수라 엄마와 아이가 함께 생활하는 가족체류형이 80~90%에 이른다. 아빠가 차를 가지고 주말에 내려와 지방 곳곳을 관광하고 지역 ‘맛집 기행’을 하면서 그 영상을 SNS에 올리는 가정도 있다. 도시에서 벗어나 흙을 밟고 산과 들에서 뛰노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을 교과서 삼아 배운다. 논두렁의 개구리 울음, 장마 뒤의 무지개, 마을 어르신의 손끝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가 모두 수업의 일부가 된다. 한 엄마는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하늘을 오래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2010년대 초반, 자연 속에서 공동체적 삶의 교육을 실현하려는-지금 ‘농어촌유학전국협의회’로 묶인-단체들의 선구적인 노력이 나타났다. 지자체의 시도 간, 그리고 시도 내 농촌유학 노력도 있었다.
흙을 밟는 도시 아이들
내가 교육감으로 재직하던 서울교육청에서 2020년대 초반부터 ‘흙을 밟는 도시 아이들’이라는 슬로건 아래 ‘생태전환교육’의 일환으로 권장하고 지원하면서 크게 확산했다. 장석웅 당시 전남교육감의 적극적 의지로 전남에서 시작해 전북·강원 지역으로도 확대됐는데, 지난 5년간 참여자가 총 2600여명에 이른다. 강원도에는 2025년 2학기 기준 44개 학교에 서울 이외의 학생까지 포함해 364명의 농촌유학생이 생겼다. 정근식 서울교육감은 최근 이를 제주도까지 확대했다. ‘제주도 한달살이’가 많은 사람에게 로망인 시대이고 교육청이 생활지원금까지 제공하니, 이제 ‘과잉 농촌유학’이 우려된다는 농담까지 들리곤 한다.
농촌유학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시골에서 한 학기 보내는 체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생태전환교육의 한 축이며, 산업문명에 대한 성찰이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기후재난이 우리의 생존 기반을 뒤흔드는 지금, 아이들이 자연을 다시 ‘배움의 공간’으로 경험하는 일은 문명사적 전환의 출발이다. 우리는 이제 “더 많이, 더 빨리”의 경쟁교육에서 “함께, 느리게, 더불어”의 생태교육으로 옮겨가야 한다. 농촌유학은 그 방향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농촌유학은 또한 도시와 농촌이 함께 숨 쉬는 상생의 교육이다.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에 몰렸던 전남 곡성의 한 학교는 도시에서 온 유학생 20명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마을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깨어나고, 학교는 다시 지역의 중심이 됐다. 아이 한 명의 존재가 마을의 미래를 바꾼 셈이다.
나는 농촌유학의 더 큰 의미를 ‘이중 로컬 정체성’에서 본다. 서울 학생이 지방 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내며 그곳을 제2의 고향으로 품게 된다면, 그 아이는 두 개의 지역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하나의 뿌리에 고정된 ‘단일 로컬’이 아니라, 두 개의 고향을 품은 ‘이중 로컬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중 로컬 정체성은 로컬 간 다양성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비교하며 보는 눈을 길러준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이런 의미를 살려 농촌유학생들에게 ‘명예도민증’을 수여했다. 아이들에게 제2의 고향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상징적 노력이다.
재경시도민회 관계자들에게 “손주에게 할아버지 고향을 제2의 고향으로 물려주는” 캠페인을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손주가 조부모의 고향 학교로 농촌유학을 간다면, 자녀 세대로 가며 끊어졌던 고향과의 유대가 세대를 넘어 이어질 것이다.
또한 농촌유학은 장기적인 귀농 지원정책이자 지방소멸 시대의 중장기 지역회복정책이라고도 의미 부여하고 싶다. 한 학기나 1년의 체류가 평생 인연으로 이어지고, 도시민이 농촌의 ‘생활인구’로 남아 지역과 관계를 맺는다. 일본에선 이를 ‘관계인구’라 부르며 지방을 살리는 새로운 개념으로 삼았다. 한국형 관계인구 확장의 가장 생생한 형태가 농촌유학생이다.
‘테마형 농촌유학’으로
이제는 농촌유학을 교육청의 시범사업으로만 둘 때가 아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주도해 ‘도시와 농어촌 교류촉진법’이 개정되며 지원의 법적 근거도 마련됐으니 거주공간 확충, 생활비 보조 등 다양한 국가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일부를 농촌유학 거점 시설 조성에 활용하고, 가족 단위 체류를 지원한다면 더 많은 도시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배울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동안의 장점은 계승하면서, ‘테마형 농촌유학’의 모델도 등장하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전북 섬진강변 마을에서는 ‘김용택 문학 농촌유학’을, 강원도 산골에서는 ‘생태예술 농촌유학’을, 남해에서는 ‘바다생태 농촌유학’을 운영할 수 있다. 자연과 문화, 지역의 인물과 전통이 어우러진 테마는 아이들의 배움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시(詩) 농촌유학, 미술 농촌유학, 국악 농촌유학, 태권도나 골프 농촌유학처럼 예술·체육 중심으로 특성화하는 것도 좋다.
한 학기 동안 흙을 밟고, 새벽의 안개를 맞으며,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본 아이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와서도 달라진 눈으로 세상을 본다. 도시의 빌딩 숲에서도 자연의 리듬을 기억하고, 경쟁의 교실에서도 공존의 가치를 떠올린다.
이런 의미에서, 농촌유학은 도시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배우며 인간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교육의 본질 회복 운동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미 영국 BBC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한국의 농촌유학을 소개하며 “기후위기 시대의 교육적 실험”이라 평가했다. 한국의 농촌유학은 산업문명 이후 새로운 문명을 향한 교육적 전환을 세계에 보여주는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오래전 우리 윗마을에 앉은뱅이 아짐이 살았다. 할매가 되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오래다. 아짐이 언제 어떤 사연으로 앉은뱅이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짐은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부터 앉은뱅이였다. 아짐의 남편은 좌익을 도운 죄로 짧은 감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자리보전하고 누워만 있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짐네 마루에는 늘 흙투성이 일복이 놓여 있었다. 앉은걸음으로 마루 끝에 당도한 아짐은 평상복 위에 두툼한 일바지를 껴입고는 두 팔에 힘을 주어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두 팔과 엉덩이를 지렛대 삼아 흐느적거리는 다리를 끌고 밭에 당도한 아짐은 점심도 거른 채 죽어라 일만 했다. 엉덩이를 끌며 잔돌투성이 길을 오가고 흙밭에서 일하다 보니 바지 뒤가 노상 해졌다. 해진 곳에 얼마나 여러 번 새 천을 덧댔는지 일복을 입은 아짐의 엉덩이는 흑인 여성의 엉덩이처럼 거대했다.
마을 한가운데 살았지만 아짐은 언제나 혼자였다.
집 근처 커다란 팽나무 아래 누군가 놓아둔 평상은 동네 여자들의 일터요, 수다방이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아짐의 앉은걸음 속도가 유독 빨랐다. 보통 사람의 걸음보다도 더 빠른 것 같았다. 아짐의 거대한 엉덩이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기도 전에 누군가 아짐 흉을 보기 시작했다.
“반펭상을 보고 살았는디 한마을 삼시로 먼 심보로 인사 한번을 안 허까이.”
“인사만 안 허가니? 혼사고 장사고, 저 예년네헌티 십 원 한 장 받은 사램 있으먼 나서보소. 나넌 무시 한뿌랭이 받은 적이 읎네.”
동네 사람에게 아짐은 인사성 없고, 야박하고, 인색하고, 한마디로 경우 없는 여편네였다.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날 밤, 어둑어둑한 논에서 아짐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무슨 일로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한테 혼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길을 재촉하던 나는 우연히 아짐의 논으로 시선을 두었다가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내 종아리에 닿을까 말까 한 어린 벼 사이로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 가만 보니 아짐이었다. 물이 자박자박한 논에 퍼질러 앉은 아짐이 걱정되어 나는 큰 소리로 여러 차례 아짐을 불렀다. 아짐은 석상이나 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산중이라 이제 곧 시커먼 어둠이 닥칠 테고 나는 논두렁을 걸어 아짐에게 다가갔다. 아짐이 향해 앉은 쪽의 벼들이 뭉개진 게 보였다. 아마 피를 뽑으러 나온 아짐의 엉덩이에 당한 듯했다. 아짐네 벼와 벼 사이는 다른 논과 달리 간격이 넓었다. 엉덩이로 걸어야 하는 아짐의 몸 간격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해만 유독 가깝게 심어진 것인지 아니면 아짐의 몸집이 불은 것인지는 모른다. 부지런히 피를 뽑다 저녁 하러 돌아선 아짐의 눈에 자신의 엉덩이에 짓눌린 벼가 보였던 게 아닐까. 그 순간 아득해진 게 아닐까.
나는 신발을 벗고 논으로 내려가 아짐 앞에 앉았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깨라도 툭툭 건드렸다가는 어쩐지 아짐이 갇힌 수렁에서 다시는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짐은 울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아짐은 바로 코앞에 있는 나를 잠시 뒤에야 알아차렸다. 내가 먼저 일어나 걸음을 뗐고 아짐이 엉덩이로 진흙을 미는 소리가 들렸다. 논두렁으로 오르는 아짐에게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짐이 두 팔로 논두렁을 짚고 몸을 끌어올리는 모습이 숭고한 의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짐과 나는 서너 걸음의 간격을 두고 천천히 마을로 돌아왔다. 그 뒤로 나는 아짐에 대한 소문이나 흉 따위를 믿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홀로 울 수 있는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앉은뱅이 엄마 없이(살아 있었지만 아짐은 끝끝내 어떤 자식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결혼식을 치른 아짐의 자식들은 전처소생 딸 둘을 포함해 일곱 남매 모두 서울에서, 안양에서, 구례에서 씩씩하게 잘살고 있다. 홀로 소리 없이 울며 견뎌온 아짐의 지독한 의지 덕분일 게다. 전동차에 앉아 언덕빼기도 쌩쌩 오르며 밤을 줍는 동네 할매들을 볼 때마다 휠체어도 무엇도 없이 오직 자신의 엉덩이로 세상을 헤쳐나갔던 아짐 생각에 나도 그만 아득해진다.
소설을 쓰다가 가장 반가운 순간은 애초에 계획하지 않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면서 예정에 없던 인물을 만날 때다. 작가가 예상하지 못한 소설은 좋은 소설이 될 확률이 높은데, 소설이 소설을 쓰는 작가의 시야를 넘어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바다 오염을 다루고 싶어서 시작한 원고에 애초 주인공쯤으로 생각해둔 인물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김민수씨다. 그는 동료들에게 폭행을 당해가면서 선상의 쓰레기 투기를 영상에 담아 세상에 고발했다.
‘김민수’를 쓰는데, 인도네시아인 ‘우당’이 나타났다. 그는 최희철의 에세이 <포클랜드 어장 가는 길>에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등장했는데,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화자의 자리를 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돈을 벌러 왔다가 기계처럼 일만 하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하다 병들고, 목숨을 잃고, 배상은커녕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이들이…
배 위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배에 옷을 묶어 바닷물로 빨래를 하기도 할 정도로 물이 귀한 어선에서, 한국인 선원들은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마시지만 외국인 선원들은 조수기 물을 마신다. 조수기 물을 화분에 주면 영양가가 없어서 식물이 말라 죽는다고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계획에 없던 외국인 노동자가 자꾸만 나타난다. 봉제 노동에 관한 소설을 쓰다가 쑤안을 만났고, 농장 돼지에 관한 소설을 쓸 때는 팜을 만났다. 쑤안은 봉제 기술을 익히기도 전에 쪽방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었고, 팜은 오물투성이인 돼지농장을 청소하다가 직업을 잃었다. 가혹하고 열악한 노동 현장으로 소설이 찾아갈 때마다 한국인은 거기에 없다.
갑판 위에서 죽어가는 생선에게도 차별은 반복됐다. 고급 식재료인 눈다랑어는 낚자마자 신속하게 처리해 급속냉동실에 보관하지만, 덤으로 어망에 걸려든 치어들은 갑판 위에서 천천히 죽게 놔둔다.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 비싸게 팔리면 재빨리 죽여서 품질을 높이고, 돈이 안 되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뒀다가 바다에 버린다.
생선에 등급을 매기듯 사람에게도 등급을 매긴다. 그 등급을 높이려 한평생 발버둥치는 게 우리들의 삶 아닌가. 그런데 그 등급조차 매겨지지 않는 삶이, 죽음조차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갑판 위의 치어처럼 스스로 죽게 버려진 사람들이 가자에, 팔레스타인에 있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 걸,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고 500여명의 세계 시민이 구호선에 올랐다. 이스라엘은 이들을 체포했다. 이스라엘군 투입과 이동으로 봉쇄가 약해지는 틈을 타, 가자에는 잠시 해방의 순간이 열렸다. 굶주린 팔레스타인인들이 바다에서 생선을 잡을 수 있게 된 거다. 그물에 걸려든 생선으로 모처럼 허기를 때웠을 팔레스타인인 소식과 치어는 돈이 안 돼 갑판 위에서 죽게 뒀다 내버린다는 원양어선 소식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휘청거린다.
올 추석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삶이 삶다워지고 죽음은 죽음일 수 있는 세상이 오는 날을 기다리며 잠시 숨을 멈춘다. 중심을 잡으려고 비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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